책을 읽는 내내 무엇을 떠올리며 읽는 버릇이 생겨서 (집중력 부족인가 -_-?)
'허삼관 매혈기'를 읽을 때는 무대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배우들이 함께 했고,
'인생'을 읽을 때는 '대지'(펄벅)의 스토리텔링이 뒤섞이고,
'형제'를 읽을 때는 '녹정기'의 위소보가 뛰쳐나와 깔깔거렸다.

십 년만에 공백을 깨고 나온 소설이라 기대도 컸지만
위화의 전작에 비해 다소 실망스런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3권이라는 긴 호흡에는 조금 산만하다는 생각도 ...

하지만 위화라는 작가는 적어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다.

'형제'를 읽으면서 세대간의 역사적 간극과 빈부, 가치관, 환경에 따른 현실적 간극에 대해
사유하고 느낀 바 조금이라도 있으니 그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귀가 후 컴퓨터와 티비가 없는 방 안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지낼 수 있게 도와준 '이광두'에게도 감사를.

예스24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605827&CategoryNumber=001001017001004
   

욘석들, 그러다 넘어지겠다,
생각들기가 무섭게 꽈당 넘어졌다.
대여섯살쯤으로 보이는 남매인데 손을 맞잡고 좌르르 미끄러져,
시멘트 바닥에 맨살 끌리도록 되게 넘어졌다.

에궁, 아프겠다 ... 조심들 좀 하지 ...

남자아이는 고개만 들어올린 채, 울먹울먹 준비가 되었다.
누나인 듯 여자아이는 벗겨진 슬리퍼를 찾아신고,
옷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동생을 일으킨다.

"에 ... 에 ... 으아 ... 으아아앙"
"괜찮아. 울지 말고 일어나. 괜찮다니까 ... 어디 얼굴 좀 보자.
응. 괜찮아. 다 왔으니 어서 집에 가자."

동생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다정스레 얼굴을 다독거리는 모습과 목소리가
얼마나 어른스럽고 대견한지
찌뿌려진 이맛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저 어린 나이에도 누나란 정말 ...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이 누나도 꽤나 아팠던 모양인데 ...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남매를
사라질때까지 바라보며
동생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 지금 ... 그리고 훗 날.  

'생각 :: 生覺_살면서 깨닫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06.08.02
우울증이란  (0) 2006.08.01
돈따위  (0) 2006.07.21
8월 도서관에서 빌려 볼 만한 책  (0) 2006.07.20
핸드폰  (0) 2006.07.19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읽은
혼자 빙긋 웃다가 가슴 짠해 슬퍼하기도 하고 ...

오랫만에 정성들여 읽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중에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옮깁니다.


이날 밤, 식구들이 모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허삼관이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먹는 거라는 거 나도 안다. 밥에다 기름에 볶은 반찬 ...... 고기며 생선이며 하는 것들이 먹고 싶겠지.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너희들도 같이 즐거워야겠지. 설탕을 먹었어도 뭔가 또 먹고 싶다는 거 내 안다. 뭐가 또 먹고 싶으냐 ? 까짓 내 생일인데 내가 조금 봉사하지. 내가 말로 각자에게 요리 한 접시씩을 만들어 줄 테니 너희들 잘 들어라. 절대 말을 하거나 입을 열면 안 된다. 입을 열면 방귀도 못 먹는다구. 자 다들 귀를 쫑긋이 세우고. 그럼 요리를 시작하지. 뭘 먹고 싶은지 주문부터 해야지. 하나씩 하나씩, 삼락이부터 시작해라. 삼락아 뭘 먹고 싶니?"

"옥수수죽은 다시는 마시고 싶지 않아요. 밥을 먹고 싶어요."

"밥은 있는 걸로 하고, 요리 말이다."

"고기요."

"삼락이는 고기가 먹고 싶단 말이지. 자 그러면 삼락이에게는 홍소육 한 접시다. 고기에는 비계하고 살코기가 있는데, 홍소육이면 반반 섞인 게 제일 적당하지. 껍데기째로 말이야. 먼저 고기를 썰어서 손가락만큼 굵게, 손바닥 반만큼 크게 ...... 삼락이에게는 세 조각을 ......"

"아버지, 네 개 주세요."

"그럼 삼락이에게는 고기를 네 조각 썰어서 ......"

"아버지, 하나만 더 썰어 주세요."

"넌 네 개만 먹어도 배가 꽉 찰 거야. 너 같은 꼬마가 다섯 개를 먹으면 배 터져 죽는다구. 자 우선 고기를 끓는 물 속에 넣고 익히는데, 이때 너무 익히면 안 돼요. 고기가 익으면 꺼내서 식힌 다음 기름에 한 번 볶아서 간장을 넣고, 오향을 뿌리고, 황주를 살짝 넣고, 다시 물을 넣은 다음 약한 불로 천천히 곤다 이거야. 두 시간 정도 고아서 물이 거의 쫄았을 때쯤 ...... 자 홍소육이 다 됐습니다. "

허삼관은 아이들의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뚜껑을 여니 고기 냄새가 코를 찌르는구나. 자 젓가락을 들고 고기 한 점 집어 입에 넣고 ......"

허삼관은 침 삼키는 소리가 갈수록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삼락이 혼자 삼키는 소린가 ? 내 귀에는 아주 크게 들리는 것이 일락이, 이락이도 침을 삼키는 것 같은데? 당신도 침을 삼키는구먼. 잘 들으라구. 이 요리는 삼락이한테만 주는 거라구. 삼락이만 침을 삼키는 것을 허락하겠어. 만약 다른 사람이 침을 삼키면 그건 삼락이의 홍소육을 훔쳐먹는 거라구. 다른 사람들 요리는 나중에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러지들 말라구. 먼저 삼락이가 먹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 요리는 따로 만들어 줄게. 삼락이 잘 들어라 ......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으니까 맛이 어떠니? 비계는 느끼하지 않고, 살코기는 보들보들한 것이 ...... 내가 왜 약한 불로 곤 건지 아니 ? 맛이 완전히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야. 삼락이의 홍소육은 ...... 삼락아, 천천히 먹도록 해라. 자 다음은 이락이. 넌 뭘 먹고 싶니 ?"

"저도 홍소육요. 전 다섯 개 썰어 주세요."

"좋았어. 이락이에게는 다섯 점을 썰어서 살코기와 비계를 반반으로, 물에 넣고 삶은 다음, 식혀서 다시 ......"

"아버지, 형하고 삼락이가 침 삼켜요."

"일락아."

허삼관이 꾸짖었다.

"아직 네가 침 삼킬 차례가 아니잖아."

그러고는 요리를 계속했다.

"이락이 고기 다섯 점을 기름에 볶아서, 간장을 뿌리고, 오향을 ......"

"아버지, 삼락이가 아직도 침을 삼켜요."

"삼락이가 침 삼키는 건 자기 고기를 먹는 거야. 네 고기가 아니잖아. 네 고기는 아직 다 안 됐잖니 ......"

허삼관은 이락이의 홍소육을 만들어 준 다음 일락이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일락이는 뭘 먹을래 ?"

"홍소육요."

허삼관은 기분이 약간 상했다.

"세 놈이 죄다 홍소육을 먹겠다니 ...... 왜 좀더 일찍 말하지 않고. 일찍 말했으면 한꺼번에 만들잖아. 그러면 한 번에 끝나고 ...... 자, 그럼 일락이에게 고기 다섯 점을 썰어서 ......"

"전 여섯 점 주세요."

"일락이에게는 여섯 점을 썰어서, 고기와 비계를 반반으로 ......"

"고기는 빼 주세요. 전부 비계로 해 주세요."

"반반으로 해야 맛있는 거야."

"전 비계만 먹고 싶어요. 고기에 살이 하나도 없는 걸로 먹고 싶어요."

이락이와 삼락이도 함께 소리쳤다.

"우리도 비계를 먹고 싶어요."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비계로 된 홍소육을 만들어 준 뒤 허옥란에게 붕어찜을 요리해 주었다. 붕어에다 훈제 고기, 생강, 버섯을 함께 넣어 소금을 살짝 바르고 황주를 뿌린 뒤 잘게 썬 파를 얹어서 한 시간 정도 익힌 후에 뚜껑을 여니 맑은 향기가 방 안에 가득히 ......
허삼관이 눈에 선하게 만들어 낸 붕어찜은 방 안 가득히 침 넘어가는 소리를 자아냈다. 그러자 허삼관이 아들들을 꾸짖었다.

"이건 너희 엄마를 위해서 만든 건데, 너희들은 침을 왜 삼켜?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었으면 이젠 자도록 해라."

마지막으로 허삼관은 자기가 먹을 돼지간볶음을 만들었다.

"돼지 간을 먼저 잘게 썰어서, 아주 작게 썰어 가지고 사발에 우선 담은 다음, 소금을 뿌리고 얼레짓가루를 입힌다고. 얼레짓가루가 돼지 간을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거든. 그 다음에 황주 반 잔을 뿌리는데, 황주는 돼지 간 냄새를 없애 준다고. 그리고 파를 잘게 썰어 얹고나서 솥의 기름이 충분히 데워져 김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돼지 간을 기름에 넣고 한 번, 두 번, 세 번 뒤집어 ......"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

일락, 이락, 삼락이가 허삼관을 따라서 계속 볶아 대자 허삼관이 아들들을 말렸다.

"안 돼. 세 번만 뒤집으면 된다구. 네 번부터는 굳어진단 말이야. 다섯 번부터는 질겨져서 여섯 번 볶으면 이젠 씹을 수조차 없게 된다구. 세 번만에 간을 끄집어 내서 천천히 먹기 시작한단 말씀이야. 황주 두 냥을 따라서 먼저 한 모금 마시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뜨거운 기운이 확 느껴지는 게 마치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씻을 때처럼 후끈하단 말씀이야. 에에, 이 황주는 또 장을 깨끗이 씻어 주는 역할을 하지. 그러고 나서 젓가락을 들어 돼지 간 한 점을 집어다가 입에 넣고 ...... 카,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로구나 ......"

방 안은 군침 도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 돼지간볶음은 내 요리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그리고 당신까지 다들 내 요리를 훔쳐먹고 있는 거라구."

허삼관이 기분 좋게 큰소리로 웃어 댔다.

"그래,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 자, 다들 내 돼지간볶음 맛을 보라구."


+ Recent posts